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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최인기-도시의 균열]

 

일시 : 2014.9.20~10.19

장소 : 신촌 쉬바펍
초대일시 : 9월 20일 6:00~7:00PM
전시시간: 7:30PM ~ 02:00AM (매주 월요일 휴무)
기획/진행 : 박은선(리슨투더시티)
 
소개 :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의 저자이자 사진으로 현장을 기록하고 계시는 최인기 빈민운동가의 사진전을 엽니다. 전환도시;해킹더시티에서는 도시를 하나의 생태계로 이해하며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도시의 균열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사진/ 혹은 균열을 만드는 사진들을 전시하려 합니다.  

 

"은폐된 존재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최인기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서평

 

글: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수유너머N 회원 박은선

 

 

 

매력적인 도시 서울

 

도시란 매력적인 주제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이고, 일자리가 있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고, 소비하고, 욕망을 분출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을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이방인들이 서로 마주칠 만한 장소"라고 도시를 정의한다. 우리는 도시를 산책하며 공상에 빠지기도 하고 매일 다른 경험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특히나 서울이라는 도시는 너무 커서 어떤 서울 사람도 서울을 다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힘들다. 수많은 쇼핑센터들, 상점과 거리들, 수많은 학교들, 산과 넓고 긴 한강… 서울을 한 눈에 본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공간적으로 한눈에 서울의 윤곽을 그리는 일도 힘들지만 그 성격도 하나로 정의하기란 더욱 힘들다. 수만 명이 서로 스쳐가며 눈 하나 마주치치 않아도 전혀 문제없는 곳이 서울이지만, 때로는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소통과 공공성에 목마른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 번에 거리를 점거해 전혀 다른 문맥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마천루가 쉴 새 없이 지어지고, 허물어지고 내일은 어떤 건물이 들어설지 예측할 수 없는 도시,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분출 실현되고 허물어지는 공간, 바로 이 비 규정성이 서울의 매력이지 싶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데 어떤 자들의 경험과 목소리는 공유되지도 기록되지도 못하며, 심지어는 고의로 삭제된다. 우리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며, 보여도 애써 못 본 척해야 하는 존재들이 분명 서울에 있다. 빈민운동가 최인기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동녘 펴냄)은 바로 이 영역을 가시화시키고 보이지 않는 자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책이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인기는 자신의 육체에 서울이라는 도시의 기억을 담고 사는 사람이다. 청계천 주변 동대문운동장 근처에서 자라나 노동자로 또 빈민운동가로 살고 있으며 특히 동대문운동장 강제철거를 기점으로 생긴 '민주노점상전국연합'의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첫 책 <가난의 시대>(동녘 펴냄, 2012)가 일제 강점기부터 이명박 정권까지의 도시빈민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라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재 동시대 서울의 비가시적 영역을 다룬다.

 

 

서울 도시 역사에서 이명박 전 시장과 오세훈 전 시장의 재임기간은 서민들과 빈민들에게는 일종의 재앙이었다. 갑작스런 33개의 뉴타운 설정, 청계천 동대문운동장 개발 같은 일방적인 개발, 노점 철거, 피맛골 철거 등 수많은 철거로 서민들이 목소리도 못 내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청계천 개발과 동대문운동장 개발이 사회에서 비판받는 이유는 우리의 세금을 낭비했다는 부분도 있지만, 그러한 개발이 사회적 합의를 거치기 전에 얼렁뚱땅 '폭력적으로' 해치워졌다는 점이 더 크다. 

 

 

그런데 이명박, 오세훈 전 시장이 용역깡패를 써서 청계천 개발과 동대문운동장 개발을 강행했다는 사실을 몸으로 기억하고 기록한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뉴타운 개발로 서울시내의 월세 값은 폭등했고, 노점상은 용역깡패를 대동한 잔인한 단속 탓에 절반으로 줄었다. 만약에 최인기 같은 활동가가 없었더라면 500년 역사의 저잣거리 피맛골이 사라진 과정을 기억하는 자들도 없을 터다. 이 책은 '누가 이곳을 기억해줄까?', '개발이라는 이름의 괴물', '이곳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새로운 공간이 들어선 자리' 총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창신동, 동대문운동장, 노점상, 상도4동, 포이동, 용산, 동자동 쪽방촌, 청량리 588, 가든파이브, 백사마을 그리고 개미마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의 가장 특이한 점은 생생한 경험의 진술에 있다고 본다. 현학적인 문체가 아니라 이야기하듯 글을 써 내려가 문체가 생동감이 있다고 할 수 있고, 또 이 현장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화'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흡인력이 있다. 바로 이 점, 그러니까 철거민이나 노점상이라는 대상을 관찰하는 시점이 아니라 거리를 지워버린 입장에서 서술한다는 점 때문에 혹자는 편안함을 혹자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보통 사회학적 관점에서 도시빈민이나 도시문제를 다룰 때 연구자는 현장이나 사람들을 타자화하기 마련이며, 객관성이라는 신화는 늘 대상과의 일정한 거리를 두게끔 우리를 훈련시킨다.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저자는 조금 다르다. 그가 이 책에 열거된 현장을 전혀 대상화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외부에서 관찰하고 연구했다기보다 이웃의 입장에서, 동료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책에 실린 사진의 각도 또한 다르다. 보통 사진기자들이나 현장을 가끔 찾아 사진을 찍는 다큐 사진가들의 사진과는 달리 대부분의 인물 사진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때로는 초점이 나가고 흔들렸을지라도 저자는 그들의 눈을, 얼굴을 정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직접 그들과 함께 하고 현장에서 생활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기록도, 이러한 앵글도 불가능할 터다. 

 

 

 

폐쇄된 공동체 

 

'디자인 서울'의 핵심이자 '단군 이래 최대 개발'이라 불리던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이제 완전히 폐기되었지만, 앞으로 폭력적인 시장이 당선되면 또 다시 비리와 폭력으로 얼룩진 얼굴을 들이밀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몰아내더니 지금 용산은 잡초만 무성한 빈 땅으로 남아있다.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다가 용산 참사에서 아버지를 잃고, 피해자이면서도 4년이란 옥살이를 한 이충연씨의 인터뷰가 눈에 들어온다. "문제는 세입자예요, 세입자를 위한 게 하나도 없어요. … 임시상가를 세워달라고 했는데 선례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합의할 수 없다 했어요." 

 

 

그는 용산 문제의 핵심을 '국가폭력' '생존권 투쟁' 두 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용산 참사 이후 6년이 지났지만 아직 상가 세입자에 대한 대책도 수립되지 못했고, 국가 폭력도 단절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 사실 가장 중요한 하나가 빠졌다. 용산 철거민들을 '떼쓰는 사람들' '폭도'로 스스럼없이 부르던 자들 즉 '폐쇄된 이웃'(Gated neighbour)이다. 

 

불타버린 용산 남일당 건물 앞을 택시를 타고 지나갈 일이 있었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불탄 남일당을 보며 "떼쓰다가 저리 됐으니 자기 탓"이라고 차갑게 내뱉었다. 그런 상식 밖의 말은 사실 용산구청에서도 들을 수 있었고, 인터넷상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도시에서 자기의 이익을 잠재적으로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자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현상을 일컬어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라고 한다. 거칠게 번역하면 '폐쇄된 공동체' 쯤 될 텐데 바로 이 폐쇄된 공동체성은 요즘 도시 문제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공동체'성은 축소되고 왜곡되어 중산층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자들, 즉 자격 없는 자들을 제외시키는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이일수 옮김, 강 펴냄)에서 이런 행위를 인종차별주의(racism)라고까지 부른다. 도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지위를 지역 구분 짓기를 통해 획득하려고 애쓴다. 강남과 강북으로, 자이 혹은 래미안 같은 아파트의 브랜드로, 같은 아파트에서는 평수 별로 끊임없이 쪼개고 쪼개 구분 짓기를 원한다. 안락하고 안전한 우리만의 게토(Ghetto)를 만들고 그 안에서만 교류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표출한다. 평수가 작은 동과 평수가 넓은 동 사이의 출입구를 막고, 주공아파트 주민들이 브랜드 아파트 길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철문을 세운다. 그 안에 소속된 자들은 안전(Security)을 요구한다. 불결하고, 불안한 요소들을 끊임없이 제거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폭력적 재개발에 반대하는 용산 철거민들은 힘든 상황에 처한 이웃이 아니라 테러리스트이고, 거리에서 장사하며 살아가는 노점상은 거리의 장애물이며, 노숙인들은 인권이 없는 존재들이다. 이 책을 읽는 감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애써 감추고 싶은 도시 내부의 치부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와 너를 가르고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구획 짓는 도시 문법에 익숙한 '폐쇄된' 도시인들에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공성과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대체 도시의 공공성은 무엇일까? 우리는 공동체 실험을 하면서, 또는 열린 공간을 강조하면서도 결국엔 내부에서 계속 구분 짓기를 하지는 않았을까? 도시의 가난과 모순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도시의 표면에만 집착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서울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미시적으로 그 안에 어떤 역사가 있을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실재'로의 입문서이자 이야기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피부 밑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공동체성과 공공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http://m.pressian.com/section_view.html?no=11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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